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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스포) 유저 경험을 철저히 짓밟은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 과연 pc주의가 문제일까?

지난 주 금요일인 2020년 6월 19일, 플레이스테이션 역대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후속작인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발매되었습니다.

 

시작부터 결말까지 스토리를 쭉 감상한 입장으로서 굉장히 기분이 더러웠는데요,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먼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조엘의 죽음]

 

게임이 시작하고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라오어 1에서 유저 본인과 다름없었던 조엘이 새로이 등장한 캐릭터 애비에게 정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살해당합니다. 저는 전작의 주인공이자 유저 본인이었던 조엘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야만 할 정말 어쩔 수 없는 윤리적 당위성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만, 그따위 것은 없었고 이유는 그저 조엘이 애비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애비의 아버지는 엘리의 뇌를 열어 샘플을 채취하려 했고, 애비 본인은 아버지의 잘못은 없다며 도리어 엘리를 죽이는 것을 종용합니다. 즉, 자기 딸이나 다름없는 엘리를 죽이려 드는 집단(파이어플라이)과 살인 행위를 실행하는 의사(애비의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가족인 조엘의 입장에서 더욱 당위성을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라오어 1의 시스템 상 애비의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 엘리만을 구출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개발사인 너티독은 시스템 상으로 애비의 아버지를 죽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 유저에게 "네가 저지른 행위 때문에 너(유저 = 조엘)는 산탄총을 맞아 다리를 잃고 골프채로 몇 시간동안 폭행을 당한 후에 딸이 보는 앞에서 머리가 터져 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엘이 죽게 되는 개연성도 처참했습니다. 전작에서 조엘은 차를 몰고 가던 도중 부상을 입는 척하고 도와달라는 약탈자 무리를 단번에 알아채고 들이받아버리고, 심지어 파트 2 과거회상 씬에서도 면역인 엘리에게 방독면을 써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매우 신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을 구해주면서 그 무리에 순순히 합류하고, 본명까지 숨김없이 말하는 멍청함은 갑자기 치매 증상이 발현한 것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 진행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전작에 몰입하여 조엘 본인으로서 플레이를 해 온 유저들은 신규 캐릭터인 애비에게 끝없는 적개심을 품을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엘리를 플레이하여 애비를 찾아서 죽여버리겠다는 감정이 게임을 계속해서 진행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 애비]

 

라오어 1은 대부분의 플레이 시간을 조엘의 입장에서 진행하게 되며, 조엘이 부상 당해 누워있는 시점만 (겨울 챕터) 엘리로 게임을 진행합니다. 조엘과 엘리의 지향점은 동일하며 (좀비 바이러스에 면역인 엘리를 파이어플라이 연구소에 무사히 데려가 백신을 개발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유대감이 쌓여가는 것을 게임을 플레이하는 매 순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조엘의 마지막 결심, "백신을 포기하고 엘리를 구한다"는 선택지가 게임의 유일한 결말이었음에도 유저들은 조엘을 플레이하며 공감대를 쌓아왔기 때문에 100% 몰입하며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오어2는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엘리와 조엘도 아니고, 엘리와 디나도 아니며, 엘리와 제시도 아닌 엘리와 애비입니다. 위의 조엘의 죽음을 기점으로 플레이어는 엘리에게 본인을 투영하게 되며, 애비는 플레이어 입장에서 이 게임의 "주적"이자 "복수를 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엘리가 시애틀에 찾아가서 애비를 발견하게 되고, 동료인 제시와 토미까지 죽거나 불구가 된 극적인 상황에서 느닷없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애비로 전환되며 애비의 과거 회상 장면을 보여줍니다.

 

과거 회상이 끝나도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여전히 애비이며 앞으로도 몇 시간동안 애비의 시점으로 플레이해야 한다는 점을 몰랐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애비 시점의 플레잉 타임은 게이머 입장에서 너무나도 혐오스러웠으며 "나는 왜 이 게임을 열심히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합니다. 뒤에 이어질 쓰레기같은 결말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로 "애비도 이런 사정이 있는 아이고 남을 돌봐줄 수도 있는 친구다"라는 메세지를 던지려고 넣어 둔 부분인 것 같은데 전혀 공감이 되질 않았습니다.

 

애비 시점의 플레이를 쭉 하다가 다시 시애틀에서 엘리와 마주한 씬에서 플레이어는 라오어 2에서 본인 자신이었고 전작부터 철저히 보호해 왔던 엘리를 "주적"인 애비의 시점에서 가격해야 합니다. 유저의 플레이 경험은 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전환시점부터 극도로 나빠지며 엘리를 가격하는 장면(인게임 연출이 굉장히 잔인합니다)에서 최악으로 치닫습니다.

 

 

[최악의 결말]

 

애비로 플레이하는 부분에서 게이머가 몰입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결말 부분까지 진행하는 이유는, "다시 엘리의 시점으로 전환되어 애비에게 복수할 수 있겠지" 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엘리는 마을로 돌아가 디나와 디나의 아이(제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를 키우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다시 복수를 다짐하고 애비를 찾아 떠나게 되며 엘리가 다시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돌아오게 됩니다.

 

결말 부분에서 엘리는 애비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굳이 물속에서 맨몸으로 1:1 격투를 벌이는데요, 결과적으로 엘리는 왼손 손가락 2개를 잃고 애비를 살려서 보내줍니다. 과거 회상 씬에 뭘 갖다 집어넣든 결말 시점까지도 애비가 조엘을 딸이 보는 앞에서 골프채로 때려 죽인 행위에 대한 정당화는 되지 않았고, 유저 입장에서 애비를 죽여 복수를 완성하겠다는 마음은 누그러들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애비는 멀쩡한 몸으로 탈출에 성공하고, 대조적으로 엘리는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아버지인 조엘, 친구 제시는 사망하였고 삼촌인 토미는 불구가 되어 홀몸이 되었으며 연인이었던 디나는 아이를 데리고 떠나갔습니다. 심지어 조엘과의 마지막 연결고리였더 기타는 애비와의 전투에서 잃은 손가락 때문에 제대로 연주할 수도 없었고, 기타를 내려두고 어디론가 떠나는 엘리의 뒷모습으로 게임은 막을 내립니다.

 

조엘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아닌지 중의적인 표정으로 알았다고 대답하며 끝나는 라오어 1의 결말은 엄청난 여운을 가져다주었음에 비해, 라오어 2의 결말은 도대체 이 게임을 뭐하러 플레이한거지? 라는 강한 의문만이 남습니다. 조엘이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유저들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복수는 전혀 성공하지 못하고, 도리어 복수의 대상으로 긴 시간동안 플레이하여 살려 보내주는 결말은 유저를 철저히 우롱하기 위한 장치라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의 디렉터인 닐 드럭만은 지난 4월 락스타 커트 코베인의 말을 인용하여 "인종, 성별,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라오어2를 싫어할 것"이라는 암시를 남겼습니다. 즉, pc적 요소가 게임에 섞여있으니 이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은 pc주의를 혐오하는 차별주의자라고 먼저 못을 박은 것이죠.

 

그러나 상기 문제점들(애비가 조엘을 살해할 당위가 부족한 점, 애비를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만들어 유저 경험을 망친 점, 개연성이 망가진 스토리와 최악의 결말)은 이 게임에 pc주의적 요소가 들어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엘리가 이성애자였다면, 애비나 레브가 전형적인 "여성스러운" 캐릭터였다면, 혹은 남자였다면, 유저들이 과연 이 게임을 더 좋아했을까요? 유저들이 애비의 시점에 이입하지 못하는 것은 pc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미 행적 자체가 혐오스러운 캐릭터이기 때문이었고, 이 인물을 강제로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만들고 마지막까지도 강제로 용서해야 하도록 만든 부분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선민의식의 발현이자 유저들에 대한 기만이었습니다.